'기죽는다'는 멘티의 말을 '기회'로 바꾸는 멘토링의 순간
멘토링을 진행하며 가장 보람된 순간은, 멘티가 반짝이는 성과를 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혹은 '기죽는다'고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고, 그 대화를 통해 스스로 새로운 관점을 찾아나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얼마 전, 데이터 분석 과정을 수료하고 인턴을 시작하게 된 한 멘티(ㅇㅇ님)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멘토님 잘 지내시나요 ㅎㅎ.. 인턴 생활 시작하면서 멘토님께 배웠던 게 많이 생각나기도 하고... 날씨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이런 연락을 받을 때, 멘토가 할 수 있는 답장은 여러 가지입니다. 의례적인 감사와 격려로 끝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짧은 안부 인사에 담긴 '근황 공유'와 '관계 유지의 희망'이라는 신호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의 첫 번째 답장은 이랬습니다.
"ㅇㅇ님 오랜만입니다! 잊지 않고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데이터 분석 인턴하고 계신지, 인턴은 할 만 하신지 궁금하네요 어려운 점 있으시면 큰 도움 안될지는 몰라도 얘기주세요 저는 이미 감기에 걸려서 고생중인데, ㅇㅇ님은 컨디션 신경 잘 쓰시고 인턴 과정 잘 마치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핵심은 '심리적 안전지대'를 만들어주는 한마디, "큰 도움 안될지는 몰라도"였습니다.
멘토가 '내가 다 해결해 줄게'라는 전문가의 권위로 다가가는 순간, 멘티는 '이런 사소한 걸 물어봐도 되나?'라며 망설이게 됩니다. 하지만 멘토가 먼저 자신의 불완전함(감기에 걸려 고생 중)을 공유하고, '큰 도움은 안 될지라도'라는 겸손함(Humility)을 보일 때, 멘티는 비로소 '진짜' 이야기를 할 용기를 얻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멘티의 두 번째 답장에는 첫 메시지에는 없던 불안감과 혼란이 담겨 있었습니다.
"...데이터 분석 포지션으로 지원은 했는데, 데이터 분석 업무는 전혀 못하고 있어요. RDB가 없지 뭐예요 😂 지금은 AI기술팀에서 업무 수행중인데... 배우는 것도 많고 다른 분들이 AI 프롬프트 활용을 너무 잘해서 신기하기도 하고 기죽기도 하고 그러네요."
이것이 멘토링의 '진짜 순간'입니다. 멘티는 'RDB가 없다'는 사실(Fact)을 말하고 있지만, 핵심은 '그래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남들과 비교되어 기죽는다'는 감정(Emotion)입니다.
이때 멘토가 "RDB가 없는 건 문제네요"라며 사실에만 반응했다면, 멘티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멘티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재정의(Problem Redefinition)'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멘티의 관점을 '잘못된 직무 배정'이라는 현재의 점에서, '장기적인 커리어 전략'이라는 미래의 면으로 이동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사실 이제 슬슬 아시겠지만, 데이터 분석만을 수행하는 회사는 드물 겁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데이터 분석"만을 하는 데이터 분석가가 되겠다가 아니라, +a로 무엇을 날개로 붙일 것인가를 생각하셔야 해요...
지금은 AI 관련 업무를 맛보고 계신 것 같은데, 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업무든 나중에 어떻게든 ㅇㅇ님께 도움될테니까 지금 직무에 완전히 fit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호기심을 잃지 말고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보시길 바래요"
저는 멘티가 겪는 '직무 불일치'가 업계에서는 매우 흔한 '패턴'임을 알려주어, "드물지 않게 그런 일을 겪는다"라는 보편적 안정감을 주려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금의 혼란스러운 경험이 '잘못된 길'이 아니라, 남들은 갖기 힘든 'AI라는 강력한 +a'를 장착할 수 있는 '기회'임을 재정의해주었습니다. '기죽는' 감정을 '호기심'이라는 행동으로 전환하도록 촉구한 것입니다.
멘토링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멘티가 자신의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관점'을 설계해 주는 일입니다.
첫 번째 답장이 '겸손함'으로 멘티의 마음을 열었다면, 두 번째 답장은 '지혜'로 멘티의 시야를 넓혀주었습니다. 멘티가 이 대화를 통해 '기죽었던' 마음을 다잡고, 현재의 경험을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만들어가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예상치 못한 길목이라 하더라도 그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